'타향살이/내 집을 찾아서' 카테고리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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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내 집을 찾아서

15 내 집을 찾았다 15 내 집을 찾았다 해미의 집을 향방 때문에 포기했던 날에 심드렁한 마음으로 우연하게 화력발전소를 검색을 했는데 서해안에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짓고 있다는 어느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자세히 검색했더니 태안과 서천에 2015년과 2019년을 목표로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령에만 화력발전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서천과 태안에도 생긴다고 하니 다시 지도를 놓고 살펴보았습니다. 충남에서 화력발전소로부터 안전한 20km 밖의 지역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충남은 선택권이 그리 많지 않았고 충북의 청주와 괴산지역 등 여러 지역을 살펴보다가 전에 즐겨찾기를 해놓았던 공주의 부동산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았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매물을 발견하였는데 사진상으로는 집.. 더보기
14 내 집을 찾아서 6 14 내 집을 찾아서 6 서천을 다녀온 뒤로 다시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이전에 보기는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지나쳤던 집들을 다시 검색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지은 전원 주택들은 전에도 여러 개가 있었는데 새집의 경우 환경호르몬이나 하자의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새집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하던 집은 지어진 지 5년 이내의 집들이었기 때문에 새집들은 대부분 사진만 봤을 뿐 자세한 정보를 찾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있었고 매물로 새로 등록되는 집도 별로 없는 상황인지라 전에 흘려 보낸 매물도 다시 살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살펴보다가 태안에 1억5천과 1억8천, 2억 이렇게 세 집을 보고 싶어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마음에 두고 있던 집은 2억과 1.. 더보기
13 내 집을 찾아서 5 13 내 집을 찾아서 5 이사를 위해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14년 1월말부터인데 이때는 정말 아무런 경험도 없이 집을 알아봤던 때였고 시간이 가면서 스킬은 늘었지만 9월 20일이 전세 계약 만기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은 조급해 지기 시작했습니다.시간이 많이 남았을 때에는 여유가 있다 보니 어지간한 집들은 성에 차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조급해지면서 눈도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9월이 만료일이어도 사고자 하는 집의 세입자나 주인이 집을 구할 시간을 한 두 달 정도는 줘야 하고 이사를 가기 전에 수리를 하거나 손을 보아야 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실상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5월로 접어들면서 매물도 뜸하게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조급함은 더 심해졌습니다.그러던 차에 우리가 처음으로 찾.. 더보기
12 내 집을 찾아서 4 12 내 집을 찾아서 4 태안 서산 지역에서 집을 계약하려다 포기한 후 한동안 인터넷으로 태안과 서천의 중간인 보령 지역의 집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보령의 집들은 애초에 보령 화력 발전소로 인해서 대상 지역에서 제외됐던 곳입니다. 제 형님이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시기 때문에 형님을 통해 들은 정보로는 화력 발전소에서 20km 이상은 벗어나야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보령 지역을 제외한 서산이나 태안 또는 서천 지역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서천도 마땅치가 않았고 태안이나 서산에서도 실망을 한 탓에 보령 지역에서 화력 발전소의 영향을 받지 않을만한 지역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상의 거리를 측정한 결과 홍성군의 북동쪽이나 청양군의 북동쪽이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었고 .. 더보기
11 내 집을 찾아서 3 11 내 집을 찾아서 3 세 번째로 집을 보러 간 곳은 공주에 위치한 집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다음이나 네이버의 부동산 포털에서 벗어나 네이버 지도에서 부동산을 검색해서 부동산 홈페이지를 직접 찾아서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음이나 네이버의 포털을 이용했는데 그곳에 등록된 집들은 다소 제한적이었으나 부동산에서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는 다음이나 네이버에는 없는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에 점차 부동산의 홈피를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주의 한 부동산 홈페이지에서 1억짜리 매물을 보게 되었는데 거의 40평 대에 슬라브주택이었습니다. 그때는 슬슬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 지치기도 했었고 이 집 저 집을 보면서 집을 구하기가 힘들어지자 마음도 낮아지기 시작했던 터라 이쁘지는 않아도 사진으로만 보기엔 .. 더보기
10 내 집을 찾아서 2 10 내 집을 찾아서 2 처음 집을 알아보기 위해 서천을 향했다가 실망감을 안고 돌아온 그 주에 우리는 다시 집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고 이번에는 충남이 아니라 충북 지역의 부동산을 찾아 역시 부동산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여러 집 중에 마음에 드는 집 두세 군데를 보러 가겠노라고 전화를 한 후 부동산을 방문했습니다.그 부동산은 제천에 있는 하늘부동산이었는데 사장님하고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집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집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에 부동산 사장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의 말투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기에 충청도 분이 아니시구나 했는데 자신의 처가가 바로 제천이고 자신은 자신이 나고 자란 경상도보다도 제천에 더 정이 간다고 말씀하시면서 귀촌을 하게 되면.. 더보기
09 내 집을 찾아서 1 09 내 집을 찾아서 1 귀촌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알아본 지역은 충남의 서천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천 지역에는 인터넷에 매물을 올려놓은 부동산이 별로 없었고 대부분 보령지역의 부동산에서 서천 지역의 매물들을 등록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서천 지역의 매물들을 올려놓은 한 부동산 홈페이지를 통해 3개 정도의 집을 보고자 14년 2월 말에 부동산을 방문해서 집들을 보고 왔습니다. 첫 번째 보고자 했던 집은 1억 7천에 매물로 나온 집이었는데 태양광 발전과 태양열 온수 시설이 되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집을 신축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집이어서 마음에 들었는데 집주인이 집을 비운 탓에 집 내부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여건은 좋았지만 집 앞에 작은 연 밭이 있었고 무엇보다 이 집을 .. 더보기
08 아파트 2 08 아파트 2 9월에 이사를 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 쪽에서 이상하게 자꾸 가스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잔금을 치르기 전에도 가끔 이런 냄새를 맡았던 지라 잔금을 치르면서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집주인 말이 그쪽 베란다에 붙박이로 있던 김치 냉장고 밑으로 김치를 흘린 적이 있는데 그 냄새일 거라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겨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도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기에 김치 냉장고의 밑을 열어서 보았는데 정작 그곳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며 3주가 지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분무기에 비눗물을 만들어서 보일러 배관 전체에 뿌렸고 또 가스 계량기 쪽의 배관까지 비눗물을.. 더보기
07 아파트1 07 아파트1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러하지만 2012년경에는 전세를 찾기도 힘들고 전세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떻게든 오른 전세보증금을 마련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는 서서히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던 때였는지라 무턱대고 오르는 전세에 맞춰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전세라는 것이 집주인이 융자를 받은 경우에 집값이 하락하거나 집주인의 경제 사정이 나빠져 경매로 넘어갈 때나 혹은 파악할 수 없는 집주인의 세금 문제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될 때는 간혹 전세금의 일부라도 회수불능 상태에 빠질 수가 있기 때문에 저는 가급적 기존에 살던 집의 전세금 정도에서 집을 얻기를 바랬습니다.그런데 서울에서는 도무지 그 가격으로는 우리에게 맞는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 결국 서울을 벗어나 .. 더보기
06 다가구 2층 06 다가구 2층 신림 11동에서 다시 신림 4동으로 이사를 하려고 엘림부동산의 사장님을 찾아갔는데 전셋집으로 나온 것이 딱 두 개뿐이었습니다. 하나는 1억이고 하나는 1억 4천인데 집주인이 돈이 급해 1억 2천으로 낮춘 집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8월 여름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여름이기 때문이 아니라 전세 자체를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을 위해 오피스텔과 전셋집을 동시에 구하고 있었는데 오피스텔은 물건이 많아 신림역 가까이 있는 오피스텔로 쉽게 매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셋집을 오피스텔에서 가까운 신림 5동이나 4동에 얻어야 했습니다. 기간이 얼마 안 남아 마음이 급한데다 전셋집 자체가 별로 없다 하니 어쩔 수 없이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첫 날에 4동에 있는.. 더보기
05 중국집 3층 05 중국집 3층 다음으로 이사를 한 집은 신림 11동의 5층짜리 상가건물이었는데 1층에 중국집이 세 들어 영업을 하고 있었고 2-4층은 가정집 전세를 주고 5층엔 주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전셋집 중 2층과 4층은 두 가구씩 세를 들어 사용하고 3층은 한 가구가 전 층을 사용하는 형태였는데 저희는 3층에 세를 들어갔습니다. 그 집의 평수는 대략 35평쯤 되었는데 우리가 살아본 집 중 가장 큰 평수의 집이었습니다. 집 구조는 한 쪽 끝에 안방이 있고 안방 앞으로는 넓은 주방과 거실이 있었고 반대쪽 끝에 작은 방 2개가 있었습니다. 주방과 거실의 구분은 한 가운데 벽이 있어서 그 벽을 중심으로 이편은 주방 반대편은 거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실과 주방 공간이 무척이나 넓은 집이었습니다. 처음 이 집을 소개받아.. 더보기
04 원룸집 주인세대 04 원룸집 주인세대 우리가 다음으로 이사를 한 집은 신림4동의 4층짜리 건물의 주인세대 집이었습니다. 그 집은 1-3층에는 세를 놓기 위한 원룸이 있었는데 완공된 지 꽤 되었지만 주인 세대에 입주할 사람이 없어 오래도록 공실로 남아있던 집이었습니다. 이 집은 본래 건축업자가 짓다가 자금이 어려워지자 경매로 나왔던 물건을 당시 집주인이 낙찰을 받아 소유하게 된 집이었고 전에 살던 반지하 집에서 직선으로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집이었습니다. 집주인은 저보다 3살이 많은 젊은 분이었음에도 당시 재산이 100억이 넘는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제가 만났던 집주인들 중에 가장 특이하고 가장 오픈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초대로 그분의 집에도 한번 놀러 가기도 했고 집을 관리하러 올 때면.. 더보기
03 남향의 2층집 03 남향의 2층집 아버지의 집을 나와 반지하 전셋집에서 3년을 산 후 멈추지 않는 어머니의 불평 때문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이사를 나와야 했습니다. 사실 당시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별거를 시작하면서 자기 살림을 다 내어놓고 집을 떠나왔기 때문에 우울증도 찾아왔고 그로 인해서 끊임없는 불평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급적 어머니가 원하는 것들을 대부분 들어주러 노력했지만 반 지하를 탈출하기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3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하를 벗어나 지상 층으로 가려 했지만 도저히 같은 금액으로는 지상 층을 구할 수 없었고 신대방동의 막다른 골목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2층으로 이사는 했지만 이전의 반지하는 실평수가 20평에 가까웠는데 이사를 한 2층집은 보증금은 .. 더보기
02 반지하 전셋집 02 반지하 전셋집 아버지의 집에서 이사를 결정하고 난 후에 전셋집을 알아보기 위해 주변의 이 동네 저 동네의 부동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우리가 가진 돈은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다녔지만 1층 이상의 전세는 우리의 형편으로 꿈도 꾸지 못했고 반지하나 지하로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4천에서 5천의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형편으로는 전세가 아니라 월세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월세로는 절대 목돈을 모을 수 없고 나중에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전세를 얻기로 했지만 막상 집이 있어도 돈이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아내의 직장 덕에 전세자 대출을 2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었지만 그 금액으로는 전세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 더보기
01 우리 집 세 살이 01 우리 집 세 살이 2014년 6월 14일 토요일에 어쩌면 앞으로 평생 살게 될지도 모르는 곳에 집을 계약하고 왔습니다. 결혼 후 거의 대부분을 전세로 전전했던 우리 부부에게 집을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결단 중 하나였습니다. 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간 집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일들과 또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결혼식을 올린 때는 제 나이 30세이고 아내의 나이 27세였던 가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돈도 없었고 아직 학생의 신분이었는지라 아버지의 집에 얹혀 살아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집은 제 나이와 거의 비슷한 오래되고 낡은 단독주택이었고 대문을 들어서면 세를 주기 위한 작은 부엌과 방 하나와 그것보다 조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