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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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냥남매/가을에 온 손님

사고냥

 

 

병원에서 돌아온 후 녀석은 나날이 활발해지고 사료도 정상적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녀석이 워낙 사교성도 좋고 호기심도 많은 녀석인지라 무엇이든 새로운 물건을 보기만 하면 일단 머리부터 디밀곤 합니다.

 

 

 

당시 녀석의 활동 무대는 분양하신 분이 보내준 분홍색 집과 기둥으로 된 스크래처, 삼발이 동굴이 주무대였습니다.
그러다가 녀석은 차츰 자기 키의 두세 배가 되는 책상 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힐끗힐끗 책상 위에 뭐가 있나 궁금한 눈초리로 쳐다만 보더니 어느 날부턴가 발목을 타고 올라와 책상위로 올라오는 기술을 터득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단순 호기심으로 책상 위의 이것저것의 물건들에 흥미를 보이고 일일이 냄새를 맡아보고 다녔는데 녀석은 점차 지능적인 사고냥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일단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 때 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모니터의 일부를 가린다거나 책상 위의 물건들을 떨어뜨려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책상 위를 거닐다가 우연이 떨어뜨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제 생각이었을 뿐 녀석은 고의로 물건들을 떨어뜨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녀석이 '사교냥'을 가장한 '사고냥'이 될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고양이들을 길러본 적이 없어서 녀석의 잔머리 스킬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녀석의 호기심과 놀아달라고 떼쓰며 주의를 끄는 기술력이 나날이 발전해 갈수록 이때의 직감이 역시 정확했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엄마 아빠 다리 잡고 올라오는 가을이

 

처음에는 그저 우리의 발목을 타고 올라와 허벅지를 밟고 책상위로 올라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예뻤는데 녀석은 점점 활동범위를 넓히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산악인의 말처럼 높은 곳이 있기에 올라야 한다는 듯이 녀석은 자꾸 더 높은 곳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안방을 사무실로만 쓰고 있었는데 아내의 책상과 제 책상 사이에 사무용 서랍을 놓고 그 위에 프린터를 놓을 수 있는 선반을 놓고 그리고 그 위에 프린터를 놓은 터라 프린터 위가 가장 높은 위치였습니다.
녀석이 아내와 제 책상을 사이를 왕래할 수 있도록 선반 가운데를 치우고 선반 위에 프린터를 놓은 것이었는데 녀석은 프린터 위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계속 프린터 위를 쳐다보며 기웃기웃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린터가 올려졌던 선반

 

 

그러던 어느 날 큰 결심을 했는지 프린터를 향해 점프를 하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져 책상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모니터를 보고 작업하던 중이라 녀석이 점프를 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책상 아래로 떨어져 쿵 하는 소리에 녀석이 저기를 올라가려다가 떨어졌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는데 떨어지면서 얼굴을 부딪혔는지 왼쪽 얼굴에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피부가 털 속으로 살짝 보였습니다.
무척이나 아팠을 것 같은데 녀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딴청을 부렸습니다.
사실 그때는 녀석이 딴청 부리는 것이 아니라 놀라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녀석은 지금도 점프하다 실패를 하거나 무엇을 잡으려다 놓치는 경우는 여지 없이 자기는 본래 그것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이 딴청을 부려댑니다. 
확실히 고양이 녀석들은 개들보다 자존심이 세고 자기 주장도 확실하며 호기심이 일면 반드시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습성인가 봅니다.
녀석이 노린 표적은 반드시 핥아보고 씹어보고 냄새를 맡아보아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거기다가 눈치는 또 엄청 빨라서 주인이 화낼 상황이다 싶으면 부리나케 어디론가 숨어버리곤 합니다.
전에 개들을 기를 때에는 주인이 부르면 지가 잘못한 줄 알아도 쪼르르 달려와서 귀퉁배기를 맞고는 했는데 고양이들은 지가 잘못하면 절대로 불러도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두 번 그렇게 유유히 도망치는 가을이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지금이야 몸이 이 모양이지만 젊었을 때에는 한 날렵하시던 가을이 주인님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녀석이 사고를 치고 현장을 벗어나기 전에 녀석을 낚아채서 녀석 코에 딱 밤을 날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가락은 가문이 저주로 인해 아주 짧고 굵습니다. 물론 팔도 짧습니다. ㅜ.ㅜ
이 짧은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딱 밤의 파워는 소싯적 친구 놈들 여러 명을 골로 보내버린 전적으로 친구들은 저랑은 딱 밤 놀이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딱 밤을 한두 번 맞은 가을이는 제가 손가락만 튕겨도 공격 자세를 취하고 앞발을 휘두르게 되었고 이제는 사고를 치다가도 손가락만 구부리면 하던 짓을 멈추고 줄행랑을 놓는 도주냥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시답니다.
 
- 냥이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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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스러운 가을이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군요..
    저희 딸아이가 가을이 사진을 보더니 아휴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다 있어~~~~~하며 좋아하네요^^

    • ㅎㅎ 따님한테 고맙다고 전해주세용~~ㅋㅋ
      지금도 가을인 많이 삐지면 책상위 물건 떨어뜨려요~~ㅎ
      그런데 많이도 아니고 꼭 한 개만 떨어뜨리더라구요~ㅋㅋ
      한 주 정말 많이 바쁘셨을텐데 주말 푹~쉬세요~~^^

  • 잘 보고 갑니다.행복한 주말 되시구요.^^

  • 어제 문열고 나갔더니 집 정원에 들어왔던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서 ㅋㅋ
    담으로 점프 하다 미끌어저 떨어진게 생각나네요 ㅋㅋ
    근처에 사는 암컷이였는데 역시 길냥이들은 겁이 많아요.
    좀더 있음 제가 먹을것도 줄텐데 말이죠 ㅎ

    • 길냥이들이 사람들한테 상처를 많이 받아서 더 겁이 많은가봐요...
      조금만 기다렸음 배 채울 수 있었을텐데..
      고양이들이 잘 올라가고 잘 뛰어내리지만 의외로 다쳐서 병원오는 대부분이 낙상사고래요~ ^^; 실수들을 많이 하나봐요~

  • 아빠다리 잡고 올라오는 사진은 첨 봤어요.
    가을이는 정말 사랑스러우어 ㅠㅠ

    • 네에~ 첨 올리는 사진이에요~~ㅎ
      냥이주인 글엔 되도록 안 올렸던 사진 올리거든요~ ^^
      저는 콩깍지 때문에 뭘 해도 가을이가 이쁘지만.. 사랑스럽다 해주시니 감삼당~~~흐흐~

  • 스크래처 긁는 걸 보니 가을이가 얼마나 작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네요~
    설이랑 가을이랑 은근 성격이 비슷한가 봐요ㅋㅋㅋ
    설이는 얌전한 편인데 배고프거나 놀아줬으면 싶을 때 바쁘다고 모른 척 하면 물건을 떨어뜨려요;;
    주로 열쇠 처럼 소리나는 걸 떨어뜨리는데 저번에 귀찮아서 그래 떨어뜨려라 하고 그냥 뒀더니
    텔레비전 옆에 줄줄이 세워둔 화장품 샘플을 팔로 촥 쓸어버렸던 적이 있죠ㅋㅋㅋ

    • ㅎㅎㅎㅎ 설이도 그렇군요~~~ㅋㅋㅋ
      촤악~ 쓸어버리는 모습 상상하니 넘 귀여워요~~ㅋㅋㅋ
      암튼 의사표현 하난 확실히 하는 고냥이들이에요~~ㅎㅎ

  • 가을이한테 그런 과거가 있었다니 정말 재미있네요. 저휘 미이오도 어릴적엔 가을이처럼 정말 사고뭉치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