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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냥남매/가을에 온 손님

허전함

by +소금 2013.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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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별이 되어 버린 후 녀석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고 녀석을 위해 만들어 주었던 여러 가지의 물건들만 집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지 못하는 녀석을 붙잡고 억지로 입에 넣어준 분유를 어쩔 수 없이 목구멍으로 넘기던 녀석의 모습이나 기껏 분유를 타줬더니 분유는 먹지 않고 발만 담그던 녀석의 모습들이 아른거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이동장에 만들어주었던 녀석의 집에서 늘 누워 앓고만 있다가 어느 날 어쩐 일인지 마루로 걸어 나와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햇볕을 쬐던 녀석의 모습입니다.
집에 데려오고 나서 늘 누워 꼼짝 않던 녀석이 며칠이 지난 후에 방을 벗어나 마루를 향한 것에서 어쩌면 나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햇살 아래 보은이

 

 

인터넷을 보니 고양이가 잘 먹어야 백혈병을 이겨낸다고 하길래 그때는 그저 어떻게라도 먹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먹지 않는 녀석을 수건에 감싸고 작은 주사기로 억지로 먹이기도 했고 나중에는 아기용 사료를 으깨어 역시 같은 방법으로 입에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불과 열흘 남짓밖에는 함께 하지 못한 녀석이었는데 강한 허전함을 주는 까닭은 나름 최선을 다해서 녀석을 보살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후에 알게 된 사실은 범백이 걸린 고양이에게 최선의 방법은 역시 병원에 입원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때는 이미 보은이에게는 너무 늦은 깨달음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녀석을 보낸 후에 밀려드는 허전함과 무척이나 실망한 아내를 위해서 반드시 고양이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장에서 고양이를 사올 생각은 하지 않게 됐습니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 있는 녀석들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이제 고양이를 막 기르려는 우리로서 그런 고양이들을 입양해서 잘 돌보기에는 능력 부족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야 녀석들을 다 구해주고 싶어도 그 역시 능력이 부족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동물병원에서 사오는 것은 그다지 마음 내키지 않았습니다.
당시 마누라님은 고양이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 고양이 클럽이나 카페에 가입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그런 카페를 통해서 고양이를 분양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고양이를 입양하는 데는 책임비를 지불하고 분양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고양이를 판매한다는 느낌을 없애기 위해 책임비라고 이름만 바꾼 게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카페의 여러 글들을 보니 책임비는 딱히 정해진 룰 없이 어떤 분은 길양이들의 사료값으로 쓰는 경우도 있고 어떤 분은 분양 받는 분에게 책임감을 주기 위함이며 어떤 분은 분양 후 중성화 할 때 돌려주는 등 정말 다양한 이유로 책임비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보은이와 열흘 동안 함께한 시간이 없이 인터넷을 통한 입양을 알게 되었더라면 아마도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터넷으로 입양할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인지라 모르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여 고양이를 입양하는 일들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고양이를 분양 받는 것에 대해 저한테 동의를 구한 마누라님께서는 그날부터 고양이 카페를 통해 분양 받을 고양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습니다.

- 냥이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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