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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백

초능력

by +소금 2021.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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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에서 만든 과자 중에 B29라는 과자가 있습니다.

한참을 안 나오다가 다시 잠깐 보였다가 요새는 또 안보이는 과자인데 한동안 이 과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만 생기면 이 과자를 사먹기 위해 수퍼마켓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사실 집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고 정해진 용돈도 없이 어쩌다 주시는 돈으로 사먹다 보니 그 좋아하는 과자를 자주 사먹지 못했습니다.

제게 용돈 주시는 걸 기쁨으로 아셨던 아버지께서도 저금통을 털어먹은 이후로는 일절 돈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내 주머니는 늘 빈털터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정말 농심의 그 과자가 그렇게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길을 걷다 '저 나무 아래 돈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무심코 그 나무 주변을 둘러보는데 500원짜리 지폐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나오기 전인지라 지폐로 된 500원이었습니다.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길에서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짜리가 아닌 500원짜리 지폐를 줍다니!

그 맛있는 농심의 카레맛 과자 B29를 다섯 봉지나 사먹을 수 있는 거금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제 저금통에도 손대었고 자전거포의 자전거를 빌려 돌려주지도 않았듯이 이미 어둠에 물든 어린이었기에 그 돈을 들고 파출소를 간다거나 주인을 찾아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내 손은 그 돈을 들고 내 발은 그 옆에 있는 가게를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간 마음껏 과자를 먹고 돈이 다 떨어지고 난 얼마 후였습니다.

방과후 학교에서 놀다가 얼마 전 주웠던 거금 500원이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학교에는 학교 정문 옆에 계단 형식의 콘크리트 스탠드가 있었고 그 위에는 천막을 쳐서 비가 와도 비에 젖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그 곳을 향해 걸으면서 '아- 저 스탠드에 천 원짜리 한 장만 있으면 정말 좋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터벅터벅 스탠드를 향해 걸어 올라갔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스탠드의 맨 위쪽 자리에 누군가 무심코 흘리고 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게 초능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마음 속으로 원하고 그저 땅바닥을 훑어봤을 뿐인데 거짓말처럼 그곳에 돈이 있었고 또 두 번째는 액수까지 정확히 일치했으니 내가 혹시 나도 모르는 초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 돈 천원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저 혼자 몰래 과자를 사먹어 버리고 말았지만 한동안 그 후유증으로 길바닥을 눈으로 쓸고 다녔습니다.

나를 기다리는 지폐가 길바닥 여기 저기에 떨어져 있을까 하여 가지 않아도 되는 길과 골목을 돌아 돌아서 집과 학교를 향해 걷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어처구니 없는 우연의 일치였지만 그래도 잠깐 동안은 내게 남들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있는 거라 믿으며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그때의 기억이 생각납니다.

혹여 그때 잃어버린 제 능력을 되찾아 주기 위해 제가 가는 앞길에 지폐를 흘려주고 다니실 분은 없을까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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