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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백

놀이터

by +소금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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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가 있던 동네에서 또 이사를 해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래봐야 큰길 건너 반대편에 있는 동네였지만 어린 제게는 전혀 다른 동네처럼 느껴졌던 곳입니다.

이 아랫동네는 제가 태어난 동네보다 조금은 발전되고 안정화가 된 동네였는데 가난하거나 시골에서 상경하여 막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이미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동네였기에 윗동네보다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습니다.

새로 이사한 이 동네에는 다른 동네와 다르게 놀이터가 있었습니다.

그 놀이터는 박정희 대통령 때 세운 놀이터입니다.

무슨 정책에 의하여 그 동네에 놀이터를 만들어 줬는지 모르겠지만 놀이터 외에도 놀이터 구석에 박정희 대통령이 놀이터를 세웠다는 큰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비석은 직사각 형태의 하단에 검은색 돌로 상단을 쌓고 검은 색 상단에 기념 글귀를 적어 놓은 것이었는데 그 글의 내용이야 관심이 없었고 그 비석 자체가 우리에게는 커다란 장난감이었습니다.

하단의 높이가 성인의 허리춤 높이 밖에 되지 않지만 어린 제게는 그 하단의 테두리에 올라가는 것도 또 그 위에서 뛰어 내리는 것도 처음에는 용기가 필요한 놀이였습니다.

그 놀이터에는 시소와 그네와 정글짐과 철봉이 전부였지만 철봉은 손이 닿지도 않았고 정글짐은 너무 무섭고 높았으며 그네와 시소는 많은 아이들 속에서 순번이 돌아온다는 것은 기대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별로 없는 비석이 저의 유일한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윗동네에는 이런 놀이 기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친숙하지 않은 놀이터의 놀이기구들은 그림의 떡에 불과했고 어쩌다 그네라도 차지 할라치면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워 금방 자리를 물려줘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그네는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이 많이 타는 놀이였고 남자애들은 정글짐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는 친구가 없는 저로서는 그런 놀이터가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새롭게 재미를 붙인 놀이가 하나 생겼습니다.

제가 개발해낸 놀이가 아니라 누군가가 하는 짓을 보고 따라하게 된 놀이인데 당시에는 남의 집에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윗동네에는 벨이 있는 집이 별로 없었고 평지가 아닌 언덕진 골목에 계단이 많은 동네였기에 이런 놀이는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는데 아랫동네에는 대부분의 집에 벨도 있었고 평탄한 골목길이었기에 도망치기도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혼자 할 용기가 없어서 셋째 형을 공범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이 새로운 놀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백배는 스릴이 있고 재미나는 놀이였습니다.

어떤 집은 사람이 없어서 눌러도 대답이 없었지만 일단 여러 번 눌러주고 나서 도망갈 때의 짜릿함 때문에 틈만 나면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을 가곤 했습니다.

 놀이는 어느덧 습관 아닌 습관으로 젖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형과 제가 어느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던 모습을 어머니께서 보셨던 모양입니다.

저녁에 들어와서는 어머니가 초인종 누르고 도망간 사실을 이야기하시며 여자애들이 고무줄 놀이하는 까만 고무줄로 채찍처럼 때리는데 엄청 아팠습니다.

어머니의 꾸지람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맞아야 하는 이유보다 맞은 아픔이 더 크게 다가 왔습니다.

일단은 무조건 안 하겠다고 하고선 그날 저녁 달밤의 타작은 멈췄습니다.

그후로 착한 형은 다시는 초인종을 안 눌렀지만 저는 드디어 형의 슬하를 벗어나 단독 범행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그날 이후로는 벨 누르기 전에 사방을 다 둘러보고 누르는 요령도 생겼고 다시는 어머니에게 들키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놀이도 점차 식상하게 느껴져 결국 스스로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당시는 몰랐지만 참 사고뭉치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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