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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백

가출과 유기

by +소금 2020.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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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가끔씩 당신이 운전하시는 버스에 우리들을 태우고 노선을 한번 돌고 내려주시곤 했습니다.

난곡동에서 영등포를 지나 등촌동을 돌아서 다시 난곡으로 돌아오는 노선은 꽤 긴 노선이었고 형들과 나는 자주 그 버스에 올라타고 노선 일주를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버스 타는 일은 제게 그다지 기쁘지 않은 의미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렸기 때문에 키가 작아 앉으면 버스 창밖의 모습들이 보이지도 않았고 다만 아버지의 운전석 뒤에서 사람들이 정류장마다 타고 내리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어 한참 자다 보면 종점에 다다라 아버지가 깨워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 오는 것이 버스 여행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 여행을 둘째 형은 좋아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한 아주머니가 놀러 오셨고 그분이 집에 돌아가려 버스에 탔을 때 둘째 형이 그 버스에 탄 것을 발견하고 집까지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때 밖에서 놀다 들어온 나의 귀에 형을 나무라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렸고 나는 씻고 밥을 먹으러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 어머니께서는 버스 종점으로 달리셨지만 끝내 형을 찾을 길이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파상풍에 걸려 밤이면 밤마다 방아를 찧어대던 형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얼마나 형을 찾아 헤매었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미아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형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나에게 둘째 형이 있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어린 나이로 인해 슬픔이나 괴로움을 느낄 지각이 내게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시간이 감에 따라 잃은 형 때문에 눈물 짓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것이 참 슬픈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형에 대한 짧은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더이상 형의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어머니가 형의 이야기를 하면서 늘어놓는 푸념의 아픔을 제대로 알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은 후에야 먼 일가 친척분에게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분이 한 달 내내 형을 찾아 헤매시다가 한 보육원에서 형을 찾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형을 찾고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혼자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에게 따지듯 물었더니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고 난 후 형이 우리에게 짐이 될까봐 데려오지 않았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안 데려왔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데려오지 않는 마음도 괴롭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마음을 알기까지 많은 시간을 흘려 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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