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운 냥남매/가을에 온 손님

발라당

by +소금 2013. 7. 13.
728x90
반응형

 

가을이가 어머니와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어머니 방도 가을이의 순찰 코스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을이가 저와 장난을 치다가 제 손이 미치지 않는 유일한 피난처가 어머니 방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방의 침대는 사방이 나무로 막혀 있기 때문에 가을이가 침대 밑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대신에 침대 뒤에 공간이 있어서 가끔 그리로 숨기는 하지만 그곳은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침대 양쪽으로는 개방이 된 상태라 이쪽 저쪽으로 가을이를 몰아서 잡아버리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어머니 방의 침대는 밑이 개방되어 있고 그 밑으로 들어가면 손이 닿지 않아 절대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일부러 가을이를 어머니 방으로 몰아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도 당신 방 침대 밑에 들어가 버리면 "어여 나가"라고 소리만 지를 뿐 가을이를 내보낼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발정기 가을냥

 

 

그렇게 가을이는 어머니와 점점 친해져 가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가을이는 우리에게도 하지 않던 발라당 자세를 어머니 앞에서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을이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해 하셨고 또 당신 앞에서만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하면서 은근히 자랑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교성 좋은 가을이의 애교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가을이의 행동은 그냥 발라당 눕는 것이 아니라 주저 앉아서 엉덩이만 들고 발정기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발정기 자세인 줄 몰랐는데 인터넷에 사진을 올려 자문을 구해보니 암컷 고양이의 발정기 자세라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이때가 작년 12월 중순이었는데 그때 저희는 가을이가 3개월 정도 되었다고 알고 있었기에 발정기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구조된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입양을 했던 11월에 2달쯤 된 아가냥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가을이가 구조된 것은 9월초였고 태어난 것은 8월 중순이나 말쯤으로 추측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확실히 알기 위해 동물 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가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의견을 여쭤봤더니 병원에서도 발정기가 온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우리 마나님께서는 정신적 충격이 꽤 크셨나 봅니다.
집에 데려온 지 한 달 만에 아가냥에서 갑자기 어른 고양이가 된듯한 기분에 많이 허탈해진 느낌이었나 봅니다.
아무튼 녀석의 행동이 발정기 행동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마누라님은 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한 뒤 제게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전에 가끔 고양이들이 발정기가 되어 울어대는 울음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고 그것이 무척이나 귀에 거슬린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그러다 말겠지 그러기도 했었고 밤새 울어대는 녀석을 쫓아보기도 했지만 막상 우리 집 고양이가 그렇게 울어댈 것을 생각하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좋든 싫든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는데 병원에 알아보니 중성화 수술비가 40만원 정도가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누라님께서는 또 퇴원한지 얼마 안 되어서 거금이 들어가는 탓에 제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전문 용어로 이미 낙장불입이요, 일수불퇴의 상황인데다가 이미 가을이의 발정기로 인해 허탈해하는 아내의 상한 마음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자고 하고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슬그머니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얼핏 보이는 중성화 수술비는 15만원이었고 아니 마나님께서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남편인 나에게 사기를 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날 즈음에 수컷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비는 그 정도인데 암컷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비는 40만원(검사비 포함)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악! 이럴 줄 알았으면 수컷 고양이를 입양할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암컷 고양이를 입양하자고 한 건 제 자신이었기에 잠깐 후회를 했습니다.
고양이를 처음 길러보기는 하지만 역시 수컷 녀석들 보다는 암컷 고양이가 애교가 많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누가 1억 원을 줄 테니 가을이를 넘기라고 한다면 당연히 감사한 마음으로 넘겨드릴 거구요~ㅋ
가을이에게 들어간 돈만큼 줄 테니 가을이를 넘겨달라고 하면 절대 넘겨줄 생각이 없습니다.
또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벼드시는 분이 계시다면 아니, 아니, 아니 됩니다~
아무튼 가을이의 발라당으로 시작된 사건은 어머니에게는 당신에게만 특별한 짓을 하는 예쁜 고양이로 인식되어 어머니의 마음을 확실히 여는 큰 계기가 되었고, 아내에게는 아가냥에서 갑자기 성묘가 되어버린 듯은 허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제게는 어쩌다 길거리에서 주울 수도 있는 길 고양이가 150만 원짜리 비싼 고양이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날 밤 가을이가 중성화 수술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잠 못 드는 아내와 통장의 잔고가 줄어들 걱정에 잠 못 드는 남편, 수술실로 끌려가게 될 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고양이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냥이 주인

 

 

 

 

728x90
반응형

'즐거운 냥남매 > 가을에 온 손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덧  (3) 2014.05.24
가을이의 집사 사용법  (26) 2013.09.07
원 펀치 쓰리 강냉이  (16) 2013.08.03
중성화  (16) 2013.07.27
책~인감  (10) 2013.07.20
꼬랑지  (17) 2013.07.06
사고냥  (12) 2013.06.29
투병기  (18) 2013.06.22
불안감  (10) 2013.06.15
사교냥  (11) 2013.06.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