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즐거운 냥남매/가을에 온 손님

사고냥

by +소금 2013. 6. 29.
728x90
반응형

 

 

병원에서 돌아온 후 녀석은 나날이 활발해지고 사료도 정상적으로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녀석이 워낙 사교성도 좋고 호기심도 많은 녀석인지라 무엇이든 새로운 물건을 보기만 하면 일단 머리부터 디밀곤 합니다.

 

 

 

당시 녀석의 활동 무대는 분양하신 분이 보내준 분홍색 집과 기둥으로 된 스크래처, 삼발이 동굴이 주무대였습니다.
그러다가 녀석은 차츰 자기 키의 두세 배가 되는 책상 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힐끗힐끗 책상 위에 뭐가 있나 궁금한 눈초리로 쳐다만 보더니 어느 날부턴가 발목을 타고 올라와 책상위로 올라오는 기술을 터득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단순 호기심으로 책상 위의 이것저것의 물건들에 흥미를 보이고 일일이 냄새를 맡아보고 다녔는데 녀석은 점차 지능적인 사고냥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일단 자신과 놀아주지 않을 때 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모니터의 일부를 가린다거나 책상 위의 물건들을 떨어뜨려서 사고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책상 위를 거닐다가 우연이 떨어뜨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순진한 제 생각이었을 뿐 녀석은 고의로 물건들을 떨어뜨린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녀석이 '사교냥'을 가장한 '사고냥'이 될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고양이들을 길러본 적이 없어서 녀석의 잔머리 스킬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녀석의 호기심과 놀아달라고 떼쓰며 주의를 끄는 기술력이 나날이 발전해 갈수록 이때의 직감이 역시 정확했구나 생각하곤 합니다.

 

엄마 아빠 다리 잡고 올라오는 가을이

 

처음에는 그저 우리의 발목을 타고 올라와 허벅지를 밟고 책상위로 올라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예뻤는데 녀석은 점점 활동범위를 넓히고 싶어했습니다.
마치 산이 있기에 오른다는 산악인의 말처럼 높은 곳이 있기에 올라야 한다는 듯이 녀석은 자꾸 더 높은 곳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안방을 사무실로만 쓰고 있었는데 아내의 책상과 제 책상 사이에 사무용 서랍을 놓고 그 위에 프린터를 놓을 수 있는 선반을 놓고 그리고 그 위에 프린터를 놓은 터라 프린터 위가 가장 높은 위치였습니다.
녀석이 아내와 제 책상을 사이를 왕래할 수 있도록 선반 가운데를 치우고 선반 위에 프린터를 놓은 것이었는데 녀석은 프린터 위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계속 프린터 위를 쳐다보며 기웃기웃 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린터가 올려졌던 선반

 

 

그러던 어느 날 큰 결심을 했는지 프린터를 향해 점프를 하다가 보기 좋게 미끄러져 책상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모니터를 보고 작업하던 중이라 녀석이 점프를 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책상 아래로 떨어져 쿵 하는 소리에 녀석이 저기를 올라가려다가 떨어졌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는데 떨어지면서 얼굴을 부딪혔는지 왼쪽 얼굴에 빨갛게 상기되어 있는 피부가 털 속으로 살짝 보였습니다.
무척이나 아팠을 것 같은데 녀석은 별일 아니라는 듯 딴청을 부렸습니다.
사실 그때는 녀석이 딴청 부리는 것이 아니라 놀라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녀석은 지금도 점프하다 실패를 하거나 무엇을 잡으려다 놓치는 경우는 여지 없이 자기는 본래 그것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듯이 딴청을 부려댑니다. 
확실히 고양이 녀석들은 개들보다 자존심이 세고 자기 주장도 확실하며 호기심이 일면 반드시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습성인가 봅니다.
녀석이 노린 표적은 반드시 핥아보고 씹어보고 냄새를 맡아보아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거기다가 눈치는 또 엄청 빨라서 주인이 화낼 상황이다 싶으면 부리나케 어디론가 숨어버리곤 합니다.
전에 개들을 기를 때에는 주인이 부르면 지가 잘못한 줄 알아도 쪼르르 달려와서 귀퉁배기를 맞고는 했는데 고양이들은 지가 잘못하면 절대로 불러도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두 번 그렇게 유유히 도망치는 가을이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지금이야 몸이 이 모양이지만 젊었을 때에는 한 날렵하시던 가을이 주인님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녀석이 사고를 치고 현장을 벗어나기 전에 녀석을 낚아채서 녀석 코에 딱 밤을 날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제 손가락은 가문이 저주로 인해 아주 짧고 굵습니다. 물론 팔도 짧습니다. ㅜ.ㅜ
이 짧은 손가락에서 뿜어져 나오는 딱 밤의 파워는 소싯적 친구 놈들 여러 명을 골로 보내버린 전적으로 친구들은 저랑은 딱 밤 놀이를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딱 밤을 한두 번 맞은 가을이는 제가 손가락만 튕겨도 공격 자세를 취하고 앞발을 휘두르게 되었고 이제는 사고를 치다가도 손가락만 구부리면 하던 짓을 멈추고 줄행랑을 놓는 도주냥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시답니다.
 
- 냥이 주인

 

 

728x90
반응형

'즐거운 냥남매 > 가을에 온 손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 펀치 쓰리 강냉이  (16) 2013.08.03
중성화  (16) 2013.07.27
책~인감  (10) 2013.07.20
발라당  (12) 2013.07.13
꼬랑지  (17) 2013.07.06
투병기  (18) 2013.06.22
불안감  (10) 2013.06.15
사교냥  (11) 2013.06.08
가을냥  (10) 2013.06.01
콩콩이  (12) 2013.05.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