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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내 집을 찾아서

02 반지하 전셋집

by +소금 201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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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반지하 전셋집







아버지의 집에서 이사를 결정하고 난 후에 전셋집을 알아보기 위해 주변의 이 동네 저 동네의 부동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우리가 가진 돈은 한 푼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다녔지만 1층 이상의 전세는 우리의 형편으로 꿈도 꾸지 못했고 반지하나 지하로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4천에서 5천의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형편으로는 전세가 아니라 월세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월세로는 절대 목돈을 모을 수 없고 나중에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전세를 얻기로 했지만 막상 집이 있어도 돈이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아내의 직장 덕에 전세자 대출을 2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었지만 그 금액으로는 전세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집을 알아보다 보니 우리가 살던 난곡동에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산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떠나 주변에 전세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전세가격도 오르고 집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는 지인에게 어려운 사정 이야기를 하고 돈을 빌리기로 했는데 참 감사하게도 이자 없이, 기한 없이 2천만 원을 선뜻 빌려주었고 또 다른 지인에게 5백만 원을 빌려서 신림 4동의 보라매 후문 건너편 지역에 전세를 얻었습니다. 이곳은 신대방역과 신림역의 중간쯤 되는 곳으로 외진 지역이어서 전세가격이 그리 비싸지는 않았는데 18평 크기의 반지하 집이었습니다. 

사실 둘만 살려면 더 싼 가격에 방 하나짜리 전세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오랜 아버지의 괴롭힘에 참다 폭발한 어머니는 이때부터 아버지와 별거를 시작하였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둘째 아들인 저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짝수 해와 홀수 해에 이사하는 가구가 차이가 있어서 짝수 해에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저는 홀수 해에 아버지 집을 나온 탓에 집을 구하기가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집을 구하고 나서 이사를 해야 하는데 부동산 중개비용과 이사비용 조차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당시 장인이 운영하시던 공장의 다마스밴을 빌려다가 이사할 집으로 혼자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부분의 짐을 옮기고 다마스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롱과 냉장고등 큰 짐은 화물차를 이용하여 후배 몇을 불러 함께 짐을 옮겨 저렴하게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사한 집은 참 잘 지은 집이어서 정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집이었는데 집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었던 상태에서는 꽤 좋은 집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반지하에서 살아본 것은 이때가 생전 처음이었지만 제가 다니던 교회가 개척교회여서 지하에 예배당을 마련했기에 지하 습기의 문제점은 익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 집은 집주인이 자기가 살려고 지은 집이라 그런지 기초부터 공사를 잘해서 반지하지만 습기 없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빚을 갚고 돈을 모을 때까지 오래도록 살았으면 했는데 어머니의 성화로 그 집에서 3년 밖에는 살지 못하고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하 집은 싫다고 1층이나 2층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다시피 하셨는데 어머니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 비록 낡은 집일지라도 자기집에 살다가 늘그막에 자식의 집에 얹혀살면서 그것도 반지하에서 살게 되었으니 나름 분통터지고 답답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부부는 사랑하면서 서로 닮아가든 아니면 서로 욕하면서 닮아가든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역시 자식의 경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한사코 지하 방은 싫다는 푸념으로 자식의 속마음을 상하게 하셨고 은행의 빚을 갚기 위해 무척이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었던 우리에게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매게 만드시는 원인이 되셨습니다. 

연애할 때도 학생이라 돈이 없어 좋은 구경 한 번 시켜주지 못하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반지하에 살게 되면서 마누라를 극장 한 번 데려가지 못했고 좋아하는 과일조차 맘껏 사주지 못하게 되어 나 자신의 초라함과 무능함에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의 도움으로 아내가 보수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고 제게도 수입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2년 동안 모은 돈으로 은행 빚은 갚을 수가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차차 반지하 방을 벗어날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 남편(냥이 주인)이 쓴 타향살이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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